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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

"시계의 여왕" 후민샨(Christie), 25살 재산 1,121억위안 넘어

by 태권v22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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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钟表女王, 시계의 여왕" 후민샨(胡敏珊, Christie)

하룻밤 시계 판매량 100만 홍콩달러(약 1억6천만원) 돌파

25살 때 재산이 1,121억 홍콩달러(약 18조6,119억원) 넘어

 

 

그녀는 모델로 시작해 재산이 천억이 넘는 패션계 여성 부호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바로 홍콩 챌몬드 그룹(香港香梦地集团, Charmonde Group)의 회장 후민샨(胡敏珊 호민산, Christie)이다. 후민샨은 겨우 15살에 패션계에 입문하는 등 그녀의 인생역정은 매우 화려하다 말할 수 있다.

일찍이 미국, 이탈리아의 명품시계 브랜드를 아시아 시장에 진출시켰고, 지금은 부동산, 화장품, 명품시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으며, 비지니스계에선 그녀를 "钟表女王, 시계의 여왕"으로 부르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후민샨이 25살 때 재산 천억이 넘는 슈퍼 부호가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의 성공비결은 무엇이고, 재산이 천억대라는 소문은 정말 사실일까? 그럼 후민샨의 창업 스토리로 들어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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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여왕(广告女王)

후민샨은 1975년 홍콩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았고, 또한 부모님의 세심한 보호를 받았던 후민샨은 뛰어난 비주얼과 아름다운 몸매로 학교에서 재색을 겸비한 학교의 퀸카가 됐다.

당시 홍콩 학교에서의 퀸카는 연예 스카우터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후민샨은 15살 때 연예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캐스팅 됐고, 화장품 광고 촬영에 초청됐다. 이렇게 중학생이던 후민샨은 자신의 기질과 비주얼로 생애 첫 돈을 벌었다. 돈을 벌었다는 것 이 외에 후민샨의 더 큰 수확은 바로 인맥과 사회적인 자원이었다.

 

 

 

광고를 촬영하면서 후민샨은 많은 유명기업들의 연락처를 받았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의류와 화장품 등 패션 브랜드였다. 후민샨은 졸업 후 광고촬영을 주업으로 삼으며 90년 대 홍콩의 유명 "广告女王, 광고의 여왕"이 됐다.

하지만 비록 광고의 여왕이라는 것이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라고는 하나 후민샨은 젊을때의 밥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오래동안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창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1995년 후민샨은 엄마와 함께 글로벌 패션 박람회를 참관했고, 그 중 유명시계의 이윤이 꽤 높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것을 알게된 이후 후민샨은 일부 유명 브랜드들이 지금까지 아시아지역에 대리상(에이전트)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바로 거대한 비지니스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지금 광고모델일 뿐이기에 직접 유럽과 미국의 럭셔리 명품시계를 대행하고 싶다 하더라도 상대가 그녀와 파트너로서 협력하지 않을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후민샨은 어떻게 이러한 대형 브랜드의 신임을 얻어냈을까?

 

유명 브랜드 대리(名牌代理)

명품 시계를 직접적으로 대행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후민샨은 한발 물러나 차선책을 선택했다. 자신이 저렴한 시계 브랜드를 창립하고 먼저 시계업계에서 실력을 쌓은 뒤 다시 명품 브랜드와의 파트너쉽을 생각했던 것이다.

여러해 동안 광고를 촬영하며 번 돈으로 후민샨은 자신의 시계 브랜드를 순조롭게 창업했다. 또한 후민샨은 자신이 광고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빌려 직접적으로 자신의 시계브랜드 모델을 하며 기업 초창기의 자금과 홍보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자신의 브랜드를 창업한지 5년 후 기회가 마침내 후민샨 앞으로 다가왔다. 2000년 스위스 테크노마린(TechnoMarine) 손목시계가 홍콩에서 대리점 모집 계획이었고, 이것이 바로 후민샨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기회였던 것이다.

그녀는 경쟁자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기업의 경영상황과 자신의 광고업 이력을 테크노마린에게 적극 어필하며 테크노마린이 그녀와 파트너가 되는 한 홍콩에서의 판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했다. 한바탕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 이후 테크노마린은 결국 후민샨을 선택했다. 그리고 매우 빠르게 후민샨과 럭셔리의 결합은 거대한 위력을 발휘했다.

 

 

 

우선 테크노마린은 스위스의 인기 유행브랜드로 홍콩에서 워낙 인기가 많은 데다가 후민샨이라는 광고의 여왕의 스타효과까지 겹치면서 테크노마린의 홍콩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테크노마린의 대리상으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후민샨은 또다시 2004년 필립 스타인(PHILIP STEIN) 손목시계의 아시아 대리권을 따냈고, 유럽과 미국의 유명시계를 대리하며 후민샨은 매우 빠르게 억대의 자산가로 올라서며 홍콩의 명품 시계시장의 70%를 장악했다.

이후 관리를 편하게 하기위해 후민샨은 홍콩 챌몬드그룹(香港香梦地集团, Charmonde Group)을 창립하여 유럽의 각종 럭셔리 제품을 전문적으로 대리하고 있으며, 유명시계를 포함하여 브랜드 의류, 럭셔리 화장품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후민샨의 재산이 천억대가 넘는다는 소문 또한 이때 생겨난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후민샨의 재산이 1,121억 홍콩달러(약 18조6,119억원)넘는다고 하는데, 사실 이 데이터는 챌몬드 그룹의 매출 데이터 이지 후민샨 자기 재산이 천억대가 넘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령 재산이 천억대라고 과장하지 않더라도 후민샨은 홍콩 부호계에서 절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민샨은 재산보다도 그녀의 자선과 공익에 있어서의 업적은 실제로 더 빛을 발한다.

 

 

얼굴로 먹고산다(靠脸吃饭)

후민샨은 럭셔리 제품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비지니스 기회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부동산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며 경계를 뛰어넘는 기업가가 되겠다는 뜻을 갖고있다.

 

 

 

후민샨은 멋지고 뛰어난 창업의 길 이외에도, 그녀는 부자가 된 이후 자선과 공익에 대한 지원도 매우 칭찬받을만 하다. 후민샨의 챌몬드 그룹은 일년 내내 정기적으로 각 대형 자선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예를들어 어린이 심장재단(儿童心脏基金会), 에이즈협회(关怀艾滋协会) 등이 있으며, 매년 암, 에이즈 환자 및 빈곤아동을 위한 기부 금액이 수백만 위안에 달한다.

후민샨은 일찍이 한 인터뷰에서 이전엔 자신이 사업가가 될줄은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업에 성공을 거둔 이상 사회적 책임감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싶다고 밝힌바 있다.

 

 

 

후민샨을 부르는 별칭은 매우 많다. 일찍이 광고의 여왕(广告女王)으로 불렸고, 지금 시계의 여왕(钟表女王)으로 불리는것 이 외에 그녀는 또다른 별칭을 갖고있다. 바로 도화살(桃花运, 애정운)이 가장 강한 여성사업가 이다.

이도 이해가 되는 것이 후민샨은 유명모델 출신으로 비주얼과 기질이 뛰어날 뿐만아니라, 비지니스 면에서도 성과를 꽤나 거두었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녀에게 구애를 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며 줄을 서고 있다.

후민샨은 20여년동안 두명의 남친만을 사귀었다. 바로 마오지후이(毛志辉 모지휘)와 팡웨이런(庞维仁 방유인)으로 두사람 모두 홍콩의 유명 기업가들이다. 이는 또한 후민샨이 확실히 사업을 중시하는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후민샨은 이미 마흔이 넘었다고는 하나 용모와 기질면에서 모두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녀는 홍콩의 시계의 여왕이라는 것 이외에 홍콩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기업가로 평가받고 있다.

후민샨은 자그마한 모델로 시작해 거의 자수성가하여 럭셔리 명품 기업을 설립했다. 많은 사람들은 후민샨이 얼굴로 먹고 산다고 말하고 있지만, 비주얼은 사실 하나의 밑천이고 후민샨은 이 밑천을 최대로 활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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